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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첫 번째 화가 프란스 할스의 작품세계와 초상화

by 0F 2020. 10. 14.

프란스 할스의 자화상

 

네덜란드 미술에는 렘브란트요한 베르메르 이전의 거장이 존재했다.

 

할스 - 하를럼 양로원의 이사

 

프란스 할스

 

할스 - 웃고 있는 기사

 

동시대의 화가 주디스 레이스터는 생전에는 이름을 떨쳤지만 사후에는 프란스 할스의 작품으로 오인받기도 하며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할스 - 즐거운 술꾼

 

황금시대라 불린 네덜란드의 17세기를 이끈 네덜란드 미술의 최초의 거장이다. 17세기에 들어서서 사실상 네덜란드에 대한 스페인의 지배는 무효화되었고 무역과 상업이 아주 발달했다. 그리고 그러한 황금기 속 최고의 화가 프란스 할스가 등장할 수 있게 된다.

 

할스 - 피터 반 덴 브루크의 초상

 

그의 전문분야는 초상화였다. 당대 그림의 풍속이나 화가에 대한 분위기라면... 르네상스 시대나 바로크, 로코코 시대에는 광활하고 거대한 또 과시할 수 있는 그림을 위주로 후원자가 의탁을 하거나 화가도 그렸는데, 이제는 조금은 개인적이고 소규모로 변하였다. 할스도 그에 걸맞게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탁월하게 그리는 화가로 칭송받았다. (더 정확히는 이제는 주문 제작하거나 그림을 부탁하는 후원자의 역할은 많이 사라졌고 화가가 발 벗고 나서야 하는 때가 오기도 했다. 대중들을 다루고 그릴 줄 알아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스 - Peeckelhaeringh

 

이렇게 보면 네덜란드 미술의 3대 거장(이라고 칭하겠다.) 모두 인물화에 관심이 있거나 빼어난 실력을 지녔던 것 같다. 할스는 초상화에, 렘브란트는 자화상에, 베르미어는 풍속화에 출충한 재능을 보였다.

 

할스 - 성 조지 민병대 장군들의 연회

 

그는 후원자의 요구에 따라 암스테르담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던 렘브란트와 다른 화가들의 이주와 달리 하를렘에서의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하를렘에서 민병대 활동을 했던 그는 민병대원들의 업적을 기리는 초상화를 그리며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선두주자로 올랐다. (당시 화가가 중간계급에 속하기는 했지만 그림으로 살아남기란 더욱 어려웠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상화에 대한 집념 하나로 성공한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흔히 붙는 칭호가 있다. 순간을 담는 화가. 할스의 그림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롱테이크로 촬영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초상화가 아닌 순간을 포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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