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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0세기의 수채화가 에밀 놀데

by 0F 2020. 8. 20.

 

에밀 놀데 - 최후의 만찬

 

 

예술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재 여러 가지

그 중 하나,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 - 최후의 만찬

 

 

친숙한 주제의 작품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유는

정돈된 기법과 틀을 벗어난 구성이 아닐까

 

 

 

 

Emil Nolde 

 

본명 에밀 한센의 독일 화가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미술을 공부한다. 인상주의 화풍에 대해 배우고 여러 화가들의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회귀한다.

 

그의 회화를 두 가지로 이야기하면 향토와 종교이다. 북독일의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컸으며 개명의 연유도 거기에 있다. 북방의 황량한 향토화를 그리고 고향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화가가 된다. 또 종교화에 대한 관심까지 더해져 놀데만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에밀 놀데 - 황금 송아지를 에워싼 춤

 

 

신앙심이 컸던 그는 영적인 그림을 향토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했다. 표현주의 화가라고 분류되는 그는 자신의 마음 속 피어 오르는 의무감과 믿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당시엔 종교화도 많이 그렸다.

 

 

에밀 놀데 - 성령강림제 (오순절)

 

 

인상주의에서 벗어난 그는 종교화를 제출했지만 베를린 분리파에서도 거부당한다. 1차대전 이후 동양을 거닐고 원시예술을 접하며 더욱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한다. 하지만 2차대전 당시 역시나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이라 탄압받으며 은둔생활을 한다. (원래는 나치를 지지했지만 이후 나치의 억압에 못이겨 숨어지낸다.)

 

*중간에 잠시 표현주의 모임 브뤼케파 (다리파)와 제휴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독자적인 표현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북독일, 제뷔르에 은신한 그는 그릴 환경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광활한 바다와 하늘이 다였고 혹시라도 들킬까 일본산 종이에 겨우 붓을 갖다댔다.

 

 

초기 - 후기

 

 

놀데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은둔 생활을 하기 전 향토적이고 종교적인 표현주의가 돋보이던 작품, 그리고 은둔 생활 중 여러 매체에 자연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 전자는 마치 원시사회로의 회귀를 외친 고갱같아 보이기도 하고 후자는 죽기 전 생래미 병원에서 요양하던 고흐가 그리던 풍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자를 쓴 자화상이 아른거리는 이유는 그의 확신에 찬 눈빛 때문인가, 그의 작품 때문인가. 에밀 놀데의 작품세계는 강렬하고도 확고하다. 그리고 아름다운 수채화가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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