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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담12

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2021년 영광의 첫 베스트셀러는 다름 아닌 꿈과 관련된 소설이었다. 그것은 코로나 유행으로 인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수학 분야도 아니었고, 두터운 팬층을 지닌 작가의 신작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은 꿈에 꽂힌 것이다. 마치 나처럼. 나는 왜 자연스럽게 꿈을 dream이라고 생각했을까. 소설에서처럼 영어로 바꿔도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 이중적 의미를 표현할 수가 없다. 잘 때 꾸는 꿈 말이다. 새해에 쓴 글 중에서 생생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쓰면서도 뭐 이런 소망이 다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악몽에 시달릴 바에는 아무 것도 없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책을 자기 전에 읽었다. 그리고 잠에서 깬 직후에도 읽었다. 우리가 몸소 .. 2021. 1. 16.
루이즈 글릭의 시를 알아봤던 이가 여기 있습니다. 류시화 가령 지금 심각한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 흰 침대에서 다시 못 일어나게 될지 모른다 해도, 다소 이른 떠남을 생각하면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해도 그래도 재미있는 농담을 들으면 여전히 웃을 것이고 비가 내리는지 창밖을 볼 것이고 가장 최근의 뉴스를 여전히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 산다는 것에 대해 中, 나짐 히크메트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中, 잘랄루딘 루미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 2021. 1. 13.
<세계문학에서 가려 뽑은 연시> 우리는 종종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서,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상대방에 거부감을 느낀다. 이것은 기대와 실망의 역학관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에 대해 말 못하는 속으론 그보다 더 어색하고 적응할 수 없음에, 스스로를 견디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약간의 아니꼬움을 선사한다. 가끔은 그것이 싸움 혹은 알 수 없는 토라짐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마움을 전한다. 나와 무척이나 가까운 사람이 내가 예상하던 반경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때, 그 당혹스러움과 실망을 감추기 힘들더라. 스스로의 변화를 강조하고 싶어서 하는 말은 결단코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단지 진심으로 감사의 말임을. 그리고 그러한 편견을 가져보고 또 다시 그것을 깨보고자, 오늘의 시를 읽는다. ••• 당신이.. 2021. 1. 13.
강화길 《화이트 호스》 수록작 수록작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우연히 을 추천 받았었다. 대상작이긴 하지만 당시에 나는 읽어보지 않았던 터. 설명으로만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듯 보이기도 했고 강화길 작가의 작품은 초면이었다. 왜 의 설명을 들었을 때 난해하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알겠다. 답답했다. 라는 평이었다. 늘 짧고 강렬한 한줄평으로 나에게 책의 인상을 결정하는 친구이다. 은 주인공이자 화자가 모르는 것을 독자도 모른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화자와 함께 깨달아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런 플롯은 답답함과 동시에 그것이 해소되면서 오는 놀라움이 있다. 그렇기에 이라는 이야기의 형식적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내용을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듣는 사람도 읽었던 사람처럼 답답한 것.. 2021. 1. 8.
마크 트웨인 <아담과 이브의 낙원일기> 아담은 최초의 여자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브는 최초의 남자를 오해했다. 그리고 나는 마크 트웨인을 오해하고 있었다. 작가 특유의 해학과 유머 를 나만 몰랐던 것인가? 남자와 여자라는 각 성에 대한 본질적인 심리형태의 차이, 원초적 남녀문제의 기본형. 그것을 문학이 정의할 수 있는가? 조지 오웰이 에서 정의했던 동양인의 문화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듯 의심해 볼 만한 문제임은 틀림없다. 다만 마크 트웨인은 언제나 인물에게 고유의 아름다움을 부여하기 때문에, 아담이 남자이기에 혹은 이브가 여자라는 이유로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마크 트웨인의 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 열두 제자의 이름은 당연히 알고 있겠지? 처음 들어온 두 명은 누군가? - 아담과 이브! 톰의 경쾌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2021. 1. 2.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하는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 유라. 할머니는 난생처음 자신을 위한 오전 시간을 보냈다. 빼앗아간 사람은 없는데 할머니 청춘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빼앗기지도 않은 청춘을 잃어버렸다고 속단하지 말자. 그리고 스스로가 자신의 청춘을 빼앗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말자. 혹여나 그랬다고 하더라도, 막례 할머니가 일본 여행에서 당당하게 외쳤던 것처럼 다시 찾으면 된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막례 할머니라는 존재가 센세이션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막례 할머니가 70세 노인이라서가 아니다. 젊은 컨텐츠 채널로 보이는 유튜브에는 의외로 나이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막례 할머니가 사랑을 받은 이유는 이 책에서처럼 청춘을 잃지 않은 모습 때문.. 2021. 1. 1.
미치 앨봄 「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의 교수이자 영원한 스승 모리의 이야기를 읽고는 가끔씩 떠도는 정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곤 한다. 이것이 모리에게처럼 나에게도 의미없는 것일까 의심도 해본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항설이 진실로 공론화되는 세상이기에 그럴지도. 그래서 앨봄의 말을 한 번 더 들어보기로 했다. 죽으면 어디로 갈까? 사후 세계가 있기는 한 걸까? 그렇다면 더 이상 삶을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는 고통과 혼란의 연속이겠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 상상의 나래를 펼칠 기회이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다만 조금 달랐던 것은, 대부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그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것. 죽음. 끝을 억지로 향해가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늘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애니가 어떻게 될 것인가 .. 2020. 12. 2.
김보라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 빈 종이를 주면서 날라리 투표를 시키는 담임 선생님. 사실 어른만 그런 것은 아닐 테다. 동년배 학생들마저 모두 날라리라 치부하는 이 학생. 우리의 은희. 가장 개인적일수록 보편적일 수 있다는 김보라 감독의 말을 공감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의 주인공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인물은 독자의 기억에 바탕을 둔 것이다. 물론 독자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의 많은 은희에게 바치는 이야기이고, 우리는 각자의 현실에서 은희를 떠올린다. 그래서 은희에게서 피어오르는 감정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보편적일 수 있다는 말을 창작자가 아닌 독자로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시나리오는 러닝 타임을 내 마.. 2020. 11. 24.
피천득 시 서른 해 희어 가는 귓머리를눈으로 만져 보다 검게 흐르는 윤기한 번도 쓰다듬어 주지 않았었다 길들은 염주를 헤어 보듯인연의 햇수를 세어 본다장수 회갑 지난제자들이 찾아와나와 같이 대학생 웃음을 웃는다내 목소리 예전같이 낭랑하다고책은 헐어서 정들고사람은 늙어서 오래 사느니 저녁 때 긴 치맛자락을 끌고해가 산을 넘어갈 때 바람은 쉬고호수는 잠들고 나무들 나란히 서서가는 해를 전송할 때 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구슬 비 온 뒤 솔잎에 맺힌 구슬따다가 실에다 꿰어 달라어머니 등에서 떼를 썼소 만지면 스러질 고운 구슬손가락 거칠어 못 딴대도엄마 말 안 듣고 떼를 썼소 후회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세워놓고 문 닫기 어렵다거든나비같이 비에 젖어 찾아 온 그늘잘 가라 한마디로 보내었느니이슬 그리.. 2020.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