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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지하철에서 시작해 뉴욕 전역을 휩쓸기까지 : 키스 해링

by 0F 2020. 11. 27.

 

Keith Haring (1958-1990)

 

해링 - 회상 (Silkscreen on paper)

 

팝아트 작가들이 흔히 사용한 스크린 프린트를 해링도 이 그림에 적용했다. 이렇게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기까지 해링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해링은 20세기의 많은 화가들, 그리고 지금까지도 예술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주역들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예술에 따분함을 느꼈다. 그는 케니 샤프, 장 바스키아와 함께 전시회를 다니기도 하고, 홀로 그라피티를 그리며 입지를 다졌다.

 

해링 - Crack is wack

 

비교적 짧은 생애와 작품 활동이었지만 해링은 단숨에 높은 위치로 오른다. 하지만 그는 이른 시기에 죽음을 맞이한다. 젊은 작가의 죽음은 항상 의문이 따른다. 하지만 해링은 약물이나 중독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가 마약 중독인 것이 걱정되어 Crack is wack(마약은 인생을 망친다)라는 그라피티를 남기기도 했다. 해링은 에이즈로 여명을 달리한다.

 

해링 - Fight Aids, Act up

 

에이즈와 싸우라, 행동하라. 그의 작품의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주 가벼워보이는 그라피티에는 무거운 의미가 담겨있다. 그는 인종 차별, 동성애, 에이즈와 같은 주제로부터 인간을 지키고자 하는 메세지를 담았다. 

 

 

유명 연예인은 어떤 화가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포스팅을 작성했었다. 그때 지드래곤을 언급했었는데, 지드래곤은 키스 해링의 문신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보이는 이 작품은 지드래곤의 오른쪽 팔에 새겨진 것이다. 사람들은 키스 해링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을 비난하거나 지드래곤의 결정을 의심하기도 했다. 해링의 그림 속 심원한 메세지를 발견하지 못한 채 가벼운 만화 정도로 치부하려 들기도 했다.

 

해링의 성적 지향과 작품 활동에 관계 없이 지드래곤의 결정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고, 해링의 삶과 예술도 자신의 것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해링展 미리보기 (작년까지 DDP에서는 키스 해링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해링, 바스키아와 같이 길거리에서 예술을 시작한 대중 예술의 작가들은 당시 많은 몰매를 맞기도 했다. 아직 대중문화가 완전히 자리잡지 않았던 시기이고 그들이 선구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들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하늘을 찌른다. 이제서야 우리는 해링의 진가를 안다. 

 

해링, 공공미술의 초석을 놓다. (지하철 역사에 분필 드로잉을 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과거에 그랬다는 것은 이제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훨씬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 우리에겐 많이 남아 있다. 키스 해링의 작품 세계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해링의 그림 속 하트 모양이 담은 의미를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참고 자료

키스 해링은 왜 임신부를 많이 그렸을까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Preview] 키스해링 展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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