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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프랑스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정치적 면모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by 0F 2020. 8. 26.

다비드 -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이름은 몰라도 작품은 한번쯤 보지 않았을까.

J.L. 다비드, 어쩌면 다비드라는 이름을 미술사에서 들어본 적은 있으리라.

 

 

다비드 -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르네상스, 그리스와 로마 미술을 되살려내고자 하는 문화부흥운동

 

이러한 르네상스의 심취에서 비롯한 사조, 고전주의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와 로코코 미술이 등장하지만 다시금 이에 대한 저항과 과거로의 복귀 대두된다, 신고전주의

 

17-18세기의 고전주의에서 다시 18-19세기의 신고전주의. 사람들은 얼마나 그리스·로마 미술을 탐닉해 온 것인가.

 

다비드 - 사비니 여인들

 

신고전주의

 

고전, 고대(그리스 ∙ 로마)의 부활을 목표로, 고고학적 정확성에 강한 관심을 두고 합리주의적 미학에 바탕을 둔다.

 

다비드 - 마라의 죽음

 

다비드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말년에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 거처를 옮긴다.

 

다비드의 자화상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그림을 그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에 참여했다. 그가 옥살이를 할 때 그린 자화상이다. 신고전주의 화가이지만 바로크 시대의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비슷한 우울함이 보인다.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에밀리 세레지앳 모자

 

신화화와 정치화를 주로 그린 다비드지만, 그 외의 작품에 난 상당히 매료되었다. 옷감의 표현과 인물의 표정 등을 섬세하게 잘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다비드 - 나폴레옹 대관식

 

다비드의 대표적인 역사화라고 할 수 있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과 본 작품 외에도 그는 나폴레옹의 지시로 많은 초상화와 그림을 남겼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그릴 당시 나폴레옹의 섬세한 지휘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다비드 -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안드로마케

 

다비드는 궁정화가로도 프랑스 왕실에 있었지만, 이후 정치적 동향에 따라 자신의 성향을 이리저리 바꾸며 살아남았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근현대의 프랑스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다비드의 작품에는 그러한 정치적 배경을 빼놓을 수 없을 테이니. 물론, 나는 그저 감상적인 작품도 매우 마음에 들지만 말이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2272&cid=40942&categoryId=32856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62010&cid=42635&categoryId=42635

 

추가 자료

https://blog.naver.com/helmut_lang/220567819445

 

> 다비드에 대한 내용을 잘 정리해 놓아서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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