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 해
희어 가는 귓머리를
눈으로 만져 보다
검게 흐르는 윤기
한 번도 쓰다듬어 주지 않았었다
길들은 염주를 헤어 보듯
인연의 햇수를 세어 본다
장수
회갑 지난
제자들이 찾아와
나와 같이 대학생 웃음을 웃는다
내 목소리 예전같이 낭랑하다고
책은 헐어서 정들고
사람은 늙어서 오래 사느니
저녁 때
긴 치맛자락을 끌고
해가 산을 넘어갈 때
바람은 쉬고
호수는 잠들고
나무들 나란히 서서
가는 해를 전송할 때
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
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
구슬
비 온 뒤 솔잎에 맺힌 구슬
따다가 실에다 꿰어 달라
어머니 등에서 떼를 썼소
만지면 스러질 고운 구슬
손가락 거칠어 못 딴대도
엄마 말 안 듣고 떼를 썼소
후회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
세워놓고 문 닫기 어렵다거든
나비같이 비에 젖어 찾아 온 그늘
잘 가라 한마디로 보내었느니
이슬
그리도 쉬이 스러져 버려
어느새 맺혔던가도 하시오리나
풀잎에 반짝인 것은 이슬이오니
지나간 순간은 의심치 마소서
이미 스러져 없어진 것을
아모레 여기신들 어떠시리만
그래도 그 순간이 가엾사오니
지나간 기억은 의심치 마소서
벗에게
어느제 궂었느냐
새파랗게 개이리다
쉬어서 가라거든
조바심을 왜 하오리
갈 길이 천리라 한들
젊은 그대 못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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