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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담

피천득 시

by 0F 2020. 11. 8.

 

장 자끄 상뻬 作

 

 

서른 해

 

희어 가는 귓머리를

눈으로 만져 보다

 

검게 흐르는 윤기

한 번도 쓰다듬어 주지 않았었다

 

길들은 염주를 헤어 보듯

인연의 햇수를 세어 본다


장수

 

회갑 지난

제자들이 찾아와

나와 같이 대학생 웃음을 웃는다

내 목소리 예전같이 낭랑하다고

책은 헐어서 정들고

사람은 늙어서 오래 사느니

 

 

저녁 때

 

긴 치맛자락을 끌고

해가 산을 넘어갈 때

 

바람은 쉬고

호수는 잠들고

 

나무들 나란히 서서

가는 해를 전송할 때

 

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

이런 때가 저녁때랍니다


구슬

 

비 온 뒤 솔잎에 맺힌 구슬

따다가 실에다 꿰어 달라

어머니 등에서 떼를 썼소

 

만지면 스러질 고운 구슬

손가락 거칠어 못 딴대도

엄마 말 안 듣고 떼를 썼소

 

 

후회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

세워놓고 문 닫기 어렵다거든

나비같이 비에 젖어 찾아 온 그늘

잘 가라 한마디로 보내었느니


이슬

 

그리도 쉬이 스러져 버려

어느새 맺혔던가도 하시오리나

풀잎에 반짝인 것은 이슬이오니

지나간 순간은 의심치 마소서

 

이미 스러져 없어진 것을

아모레 여기신들 어떠시리만

그래도 그 순간이 가엾사오니

지나간 기억은 의심치 마소서

 

 

벗에게

 

어느제 궂었느냐

새파랗게 개이리다

 

쉬어서 가라거든

조바심을 왜 하오리

 

갈 길이 천리라 한들

젊은 그대 못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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