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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담

김보라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by 0F 2020. 11. 24.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

빈 종이를 주면서 날라리 투표를 시키는 담임 선생님. 사실 어른만 그런 것은 아닐 테다. 동년배 학생들마저 모두 날라리라 치부하는 이 학생. 우리의 은희.

 

가장 개인적일수록 보편적일 수 있다는 김보라 감독의 말을 공감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의 주인공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 새로운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인물은 독자의 기억에 바탕을 둔 것이다. 물론 독자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의 많은 은희에게 바치는 이야기이고, 우리는 각자의 현실에서 은희를 떠올린다. 그래서 은희에게서 피어오르는 감정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보편적일 수 있다는 말을 창작자가 아닌 독자로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시나리오는 러닝 타임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영화이다. '모두 있다'는 은희의 말이 마지막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나의 감독 하에 재탄생되는 것이므로 그 감정선도 내가 끌고 가야 한다. 강약조절 없이 무작정 달려와버리는 바람에 어느새 끝인지도 몰랐다. 펼쳐진 마지막 장을 다시 앞으로 넘기고 넘겨 보았다.

나는 영화보다 드라마라는 장르를 더 좋아한다. 인내심이 없어 몇 화에 걸쳐서 드라마를 보고 있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오랜 기간 그 인물에 정을 붙일 수 있는 작품이 좋다.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대게 작중 인물에 애정을 가진 경우가 많다. 「벌새」는 영화이지만 심지어는 영지와 은희가 대면하는 장면이 채 몇이 안 되지만, 은희가 영지에게 느낀 담담함과 따뜻함을 나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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