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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담

루이즈 글릭의 시를 알아봤던 이가 여기 있습니다.

by 0F 2021. 1. 13.

류시화 <마음챙김의 시>

카지미르 말레비치 - 검은 원


가령 지금 심각한 병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 흰 침대에서 다시 못 일어나게 될지 모른다 해도,
다소 이른 떠남을 생각하면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해도
그래도 재미있는 농담을 들으면 여전히 웃을 것이고
비가 내리는지 창밖을 볼 것이고
가장 최근의 뉴스를
여전히 궁금해하지 않겠는가.

- 산다는 것에 대해 中, 나짐 히크메트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고 싶다.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더없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심지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中, 잘랄루딘 루미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 눈풀꽃, 루이스 글릭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이
고된 일들과 긴 항해 끝에
자신의 나라, 자신의 섬, 수만 평의 땅, 수백 평의 집,
그리고 자신의 방 한가운데 서서
마침내 자신이 어떻게 그곳까지 왔나를 돌아보며
이것은 내 소유야, 하고 말하는 순간,

그 순간 나무들은
당신을 감싸고 있던 부드러운 팔을 풀어 버리고
새들은 다정한 언어를 거두어들이고
절벽들은 갈라져 무너지고
공기는 파도처럼 당신에게서 물러나
당신은 숨조차 쉴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니야, 하고 그들은 속삭인다.
넌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어,
넌 방문객일 뿐이었어, 매번
언덕에 올라가 깃발을 꽂고 자신의 것이라 선언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너의 소유였던 적이 없어,
넌 한 번도 우리를 발견한 적이 없어,
언제나 우리가 너를 발견하고 소유했지.

- 그 순간, 마거릿 애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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