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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간 예술가들과 그 이유: 퇴폐미술전과 구겐하임

by 0F 2020. 7. 31.

 

퇴폐미술전

 

나치 정권 아래에 표현주의 예술을 중심으로 모든 아방가르드 예술의 퇴폐를 청산한다는 전시회

 

 

avant-garde

 

아방가르드, 전위미술 혹은 예술.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사조와 대립하고 혁명적인 예술을 전위예술, 아방가르드라고 불렀다. 특히 추상주의와 초현실주의는 모더니즘 시대에도 파격적인 시도이자 도전이었으며 아방가르드였다.

하지만 1차대전 이후에 양산된 이 예술들은 나치 정권 아래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인간 내부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미술로서 탄압되었다.

 

뭉크 - 절규

 

표현주의 대표작

 

칸딘스키 - 노랑, 빨강, 파랑

 

추상주의 대표작

 

샤갈 - 에펠탑의 신랑신부

 

초현실주의 대표작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을 향한 나치스의 증오에서 촉발된 이 전시는 오토 딕스(Otto Dix),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샤갈(Marc Chagall), 콜비츠(Käthe Kollwitz), 파이닝거(Lyonel Feininger), 그로츠(George Grosz),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코코슈카(Oskar Kokoschka), 마르크(Franz Marc), 뭉크(Edvard Munch), 피카소(Pablo Picasso), 클레(Paul Klee) 등 112명의 '퇴폐 미술가'들이 그 대상이 되었으며, 그들의 작품 1만 7천여 점이 '퇴폐미술'로 판정을 받아 소각되거나 경매에 붙여졌다.*

 

*인용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93853&cid=40942&categoryId=33048

 

 

이 모든 작가가 동시대 사람이었다는 것과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것에 다시금 놀란다.

 

 

1937년 독일의 뮌헨에서 열린 전시는 액자도 없이 무질서하게 작품들을 걸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파리의 예술가들을 억누르고 작품 활동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1940년 6월 파리가 함락되고 많은 예술가들은 파리를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예술의 중심지는 더이상 파리가 아니었으며 구겐하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뉴욕은 현대미술의 본거지로 자리잡았다.

 

페기 구겐하임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립자인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이자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사망한 벤자민 구겐하임의 딸, 페기 구겐하임. 타고난 안목과 일찍이 물려받는 재산을 통해 뉴욕을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많은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후원한 그는 나치도 두려워하지 않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파리의 예술가를 구원하고 현대미술의 길을 개척한 장본인, 페기 구겐하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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