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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수많은 수식어를 지닌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 세계, 보헤미안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다.

by 0F 2020. 8. 7.

툴루즈 로트렉 - 로라 자 루즈

 

파리 예술의 황금기, 벨 에포크 시대의 거장 툴루즈 로트렉. 유명한 혈통의 자손이지만 유전적 결함으로 152cm에서 키가 멈춘다. 외에도 앓고 있는 질환으로 몸이 매우 불편했고 가문에 승계마저 거부당한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재능과 그를 먹여 살리던 업은 결국 스스로를 인정받게 만든다.

 

툴루즈 로트렉 - 세탁부

 

로트렉은 질병으로 입술이 부르터 말을 어눌하게 하다 못해 정상적인 생활까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치료와 함께 그림에 전염하게 된다. 그의 유일한 일거리이자 어두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였던 것이다. 몸이 불편하기에 주변 사물과 사람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귀족 가문에서 자라 화려한 성에서의 일상생활과 보이는 풍경을 담았지만, 가령 하인이나 승마장면이 있겠다, 나중에는 어렵고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가 초기에 그렸던 초상화를 살펴보자. 위 작품은 그의 영지에서 일하던 일꾼을 그린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보다 로트렉하면 유명한 것은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이며 한 발 더 나아가 포스터, 그래픽 등이 있을 것이다.

 

툴루즈 로트렉 - 양말을 당기는 여인

 

그는 여성을 화폭에 자주 담았다. 특히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들'에 있는 여인을.

 

여담이라면 가문의 명예를 띄울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 로트렉이 쫓겨 나갈 땐 화가가 되었음에도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서명을 쓰지 못하고 가명에 그를 가두었는데, 그림 밑에 새겨진 문양이 왠지 모르게 감동적이다.

 

 

툴루즈 로트렉 - 화장

 

당시는 로트렉의 이 작품뿐 아니라 '화장 중인 여성들'이라는 주제가 여러모로 자주 등장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어찌되었든 드가의 여성 피사체 작품을 여러개 놓고 보자면 초기에 비해 자세가 구체적이고 일상적으로 변모하였다. 단순히 그림을 위해, 화가를 위해 짓는 포즈가 아닌 평범하지만 세밀한 관찰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다. 

 

툴루즈 로트렉 - 물랑루즈에서의 춤

 

로트렉하면 이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드가는 파리 몽마르트의 번화가에 있는 물랑루즈라는 댄스홀을 매우 사랑했다. 그에게는 아주 많은 수식어가 있다. 석판화가, 20세기적 그래픽아트, 현대포스터의 아버지, 곱추 화가 (그는 타고난 질병에 더해 어렸을 적 마차에서 굴러 척추를 다친다.) 까지. 하지만 단연코 물랑루즈의 작은 거인이 최고일 것이다.

 

툴루즈 로트렉

 

아티스트와 뮤즈. 로트렉에도 그런 존재가 있었는데 앞서 본 로라, 혹은 로자, 이다. 거리의 여인들을 본인 예술의 소재로 택한 그는 그중에서도 로라를 애인이자 친구, 뮤즈로 삼는다. 로라라는 빨간 머리 여인은 그의 그림에서 자주 보인다. 그가 죽은 많은 원인 중에는 로라가 옮긴 성병 (매독이었다고 한다.) 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 간간이 보이는 듯한 드가와 고흐에 대해 얘기해보자. 

 

 

드가도 마찬가지 여성의 모습을 화폭에 자주 담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첫째로는 발레리나인가 길거리나 소외계층의 여성인가일테다. 두 번째로는 로트렉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그래서 별 의미가 없는 관찰적인 그림을 그렸다면 (여성을 그릴 때) 드가는 작품 속에 휴머니티를 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화가 모두 여성관찰했다는 점은 동일하다. 또 어쨌든 로트렉에게 드가는 주변 가까운 어떤 스승보다 대단했으리라.

 

페르낭 코르몽

 

그리고 페르낭 코르몽의 화실에서 고흐를 만나 유일한 지기처럼 지냈다고 한다. 잘 알려진 일화는 없지만. 고흐는 자신의 초대에 응한 사람이 고갱밖에 없어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뒤에 고갱은 떠났지, 로트렉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길.

 

 

후에 로트렉은 자신의 스승 페르낭 코르몽이 그랬던 것처럼 피카소와 같은 명화가들에게 영향을 주는 작은 거인이 된다. 2020년에 대한민국 서울에서까지 전시가 열리는 걸 보니.

 

그의 전시를 소개하는 그림들에서도 느껴지듯 그는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면모를 팍팍 풍긴다. '보헤미안'은 보헤미아 지역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이젠 그저 하나의 고유어처럼 쓰이고 로트렉은 파리 보헤미안 스타일을 구축하고 현대 미술을 이끈다.

 

별개로 미술에서 보헤미안이라 함은 일관되게 보헤미안이라 칭해진 풍의 분위기를 일컷는 것이 되겠지. 우리가 흔히 체코, 보헤미아, 집시.. 하면 떠올릴 그런 이미지의 것들.

 

툴루즈 로트렉

 

로트렉의 예술 사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굳이 나누긴 어렵지만 자신의 감정과 세계에 푹 빠져 표현하는 걸 보면 인상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살았던 시대가 후기 인상주의시대에 가까운 만큼. 사실 이런 구분이 별 의미없는 화가나 작품도 많은 것 같다.

 

 

당시 상업용에 불과하던 포스터가 예술작품으로서 전시에 걸리고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가 된 로트렉. 포스터에 자신만의 느낌과 보헤미안 스타일을 담은 화가이다.

 

 

보헤미안 그러니까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고 그렸던 로트렉. 괜히 승마모자 쓰고 경주마 한 번 타보고 싶은 분위기의 보헤미안. 자유롭지 않은 신체에 갇혀 자유로운 그림을 뽐냈던 화가이다.

 


 

*참고, 인용문헌

https://cm.asiae.co.kr/article/2020031811432365218

http://blog.daum.net/cdc0324/43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ch0400&logNo=60126879238&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74404&cid=46720&categoryId=46852#art_info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0069&cid=58862&categoryId=58878

https://brunch.co.kr/@flyingpiglee/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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